2011년 12월 19일,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열차에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로 숨졌다는 사실을 사망 이틀 만에 발표했습니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김정은은 27세의 나이에 최고지도자에 오르게 됐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후계자로 내정된 뒤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전권을 넘겨받아 앞날이 가시밭길일 거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조선중앙TV (2011년 12월) :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며…]
이듬해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과 나란히 부친 운구차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포정치에 나섰습니다.
고모부이자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이었던 장성택을 국가반역죄로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등 집권 초기 5년간 처형한 간부만 1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정일 사망 5년 만인 2016년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되며 선대와 동급의 지위를 확정한 뒤에도 김정은은 이복형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암살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전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한편으로는 숙청의 정치, 공포의 정치를 통해 당·정 관료들의 충성심을 이끌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 기능의 정상화와 당·정·군의 역할 분담을 통해 김정은식 책임정치 구현에도 노력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집권 이후 4차례 핵실험을 강행했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단거리 탄도미사일부터 화성 17·18형 등 신형 ICBM에 이르기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한정된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여기에 미사일과 군사정찰위성 발사 현장에 딸 주애를 등장시키며 4대 세습 의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김영호 / 통일부 장관 (지난 12일) : 김주애를 조기 등판시키면서 4대 세습 의지를 과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고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여파, 무엇보다 1인 지배 체제를 지키기 위해 개혁과 개방에 선을 그으면서 민생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YTN 조수현입니다.
영상편집ㅣ정치윤
자막뉴스ㅣ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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