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자골목에서 만난 뚝심있는 사람들
번쩍이는 전광판들과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종로구 종로5가. 그 가운데 청계천 나래교 건너편 신진시장에는 40여년 역사의 옛스런 골목이 숨어있다. 동대문종합시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골목에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식당들은 현재 30여개로 불어났다. 100m 남짓되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생선구이집과 닭한마리칼국수집이 마주보며 수십년 동안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 위기에도, 재개발 바람에도 묵묵히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한 품목만을 고집하며 장사해온 그들의 외길인생을 들어본다.
■ 끝나지 않을 삶의 현장
오후 12시. 골목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를 타고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허기진 사람들을 유혹한다. 생선 한 마리 가격이 130원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한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이덕근 씨.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생선만 굽는 일이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쉴 수가 없다. 연탄으로 구워 옛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생선 구이 맛을 보기 위해 오늘도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사람 냄새 나는 시끌벅적 인생 장터
IMF시절 직장을 잃은 뒤, 요리밖에 할 줄 몰랐던 박봉남 씨가 새롭게 도전한 업종은 식당이었다. 개업하고 얼마간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미로 같던 시장 골목은 이제 손바닥 보듯 눈에 훤해졌다. 바로 아랫 골목에서 10년 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유미화 씨는 언제나 밝고 활기찬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한 개 두 개 적어온 삼행시 글귀들은 이제 한 권의 책이 될만큼 두꺼워졌다. 가게 안에는 그녀가 직접 지은 시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촬영 마지막날 그녀가 제작진에게 작은 선물을 내미는데..
■ 열심히 달려온 외길열차의 종착지 그리고 그 후
생선 구이집과 더불어 골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닭한마리 칼국수집 앞은 삼사오오 무리지어 있는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제는 관광 잡지에도 실릴 만큼 유명해진 골목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늘 북적인다. 30여년 전 열 두 테이블로 시작한 안복순 씨의 가게도 그 중 한 곳으로 식사때만 되면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되면 분점을 내 가게를 확장하려는 욕심도 났을 법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한 이 곳, 이 가게 하나만 성심 성의껏 제대로 꾸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녀에게는 다른 욕심이 있다. 청춘을 바쳐 일궈놓은 가게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또 다음 세대가 물려받아 이 식당이 오래도록 계속 이어지는 것.
다큐멘터리 3일 [외길 인생 - 종로5가 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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